AI 각성의 순간, 그리고 AEC 소프트웨어의 위기 신호

[서울=뉴스닻] 김 크리스 기자 = 인공지능이 전문직의 핵심 역량까지 빠르게 흡수하면서, 건축·엔지니어링·건설(AEC) 산업의 소프트웨어와 인력 구조가 근본적인 변곡점에 서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최근 시장의 반응은 기술 현장보다 훨씬 빠르다.

투자자들이 먼저 반응했다

최근 오토데스크와 벤틀리의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 실적 때문이 아니라, AI 기업 앤트로픽이 자사 AI 비서 ‘클로드’에 법률 업무 역량을 패키지 형태로 탑재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AEC와 무관한 소식이었지만, 투자자들은 다른 그림을 읽었다.

범용 AI가 하나의 전문 직무를 스스로 학습해, 단숨에 수백만 명에게 배포했다는 점이다. 법률이 가능하다면 계약 검토, 설계 검증, BIM 모델 조정 같은 AEC의 핵심 업무도 예외일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렸다. 이는 단순한 기능 개선이 아니라, AI가 ‘도구’에서 ‘직무’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현장은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AEC 업계 내부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느리다. 일부 설계·시공사는 설계 자동화, 생성형 디자인, 업무 보조 AI를 제한적으로 시험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기존 워크플로에 작은 보조 수단을 더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안정적이고 통제 가능한 실험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현재가 아니라 ‘속도와 확장성’을 본다. 신뢰와 책임, 사용성이라는 장벽만 넘으면 AI 역량은 순식간에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과거 필름 카메라나 비디오 대여 산업이 그랬듯, 변화는 준비가 끝난 뒤가 아니라 준비 중일 때 찾아온다는 점을 시장은 이미 학습했다.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느냐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기존 소프트웨어의 가치 제안이 내부에서부터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AEC 소프트웨어는 사람 중심의 업무를 지원하는 라이선스와 서비스에 기반해 성장해왔다.

하지만 AI가 판단과 조정, 최적화 같은 고부가가치 업무를 직접 수행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툴에 썼는가”와 “얼마나 큰 가치를 냈는가” 사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 의도를 말로 설명하면 결과가 나오는 환경에서는, 좌석당 라이선스 모델 자체가 낡은 방식으로 보일 수 있다.

전문성의 이동, 인력 구조도 바뀐다

이미 일부 사무소에서는 인력 확충에 신중해지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수요가 줄어서가 아니라, 산출물이 노동력과 점점 분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프로젝트가 늘면 사람이 늘었지만, 이제는 그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내재화’다. AI를 활용하면 외부 소프트웨어를 기다리지 않고, 사무소 내부에서 자체 업무 도구를 만들 수 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쪽은 소프트웨어 벤더가 아니라, 매일 설계와 시공 문제를 겪는 사용자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통제권을 되찾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아직 초반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AEC 분야의 변화는 아직 파편적이고 고르지 않다. 규제와 책임 문제가 복잡한 산업인 만큼, 부정과 회의가 공존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본은 합의가 아니라 가능성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투자자들은 이미 계산을 마쳤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향후 5년간 어떤 소프트웨어 회사가 살아남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돈을 주고 사야 할 기능이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필요할 때 즉석에서 만들어 쓸 수 있는 시대가 오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AEC 소프트웨어의 미래는 생각보다 빠르게 재편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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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크리스 기자 (chris@newsd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