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넘어 기억의 수단으로: 디지털 기술이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방법

[서울=뉴스닻] 최승림 기자 =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고령화되면서 직접 증언을 들을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연구자와 교육자, 디자이너들은 인공지능(AI), 게임, 가상현실 같은 디지털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히 과거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사 기반 게임이나 몰입형 가상공간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의 선택과 상황을 체험하게 하려는 시도다. 전문가들은 이제 기술을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책임감 있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활용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금기에서 주류로 들어온 ‘홀로코스트 게임’

한때 홀로코스트를 게임으로 다루는 것은 금기처럼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역사학자와 교육기관, 기록보관소와 협업하는 연구 중심 접근이 늘고 있다. 나치 점령하 프랑스의 유대인 가족을 그린 게임 ‘The Light in the Darkness’는 그러한 변화의 상징이다. 이 게임은 희망적인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작자는 오히려 그 점이 이용자에게 더 깊은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게임은 박물관이나 교실을 넘어, 중동 등 다양한 지역의 일반 게이머들에게까지 도달했다.

지속되지 않으면 기억도 사라진다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유지 방식이다. 단기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앱이나 가상 전시는 소프트웨어 변화와 함께 빠르게 사라질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와 기준을 공유하는 공공 디지털 인프라, 그리고 기관 내부에 상시적인 디지털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자원과 시간이 흩어지고, 디지털로 옮겨진 기억 역시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새로운 위험과 책임

생성형 AI의 확산은 또 다른 과제를 던진다. 홀로코스트는 온라인에서 관심과 반응을 끌어내기 쉬운 주제이기에, 맥락 없는 이미지 생산이나 상업적 소비로 왜곡될 위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 속도를 정책과 윤리 논의가 따라가지 못하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제 홀로코스트 기억을 지키는 책임은 창작자 개인을 넘어, 기술 기업과 정부, 국제기구까지 함께 져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유엔과 같은 국제 무대가 그 논의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중요한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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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림 기자 (seunglim.choi@newsd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