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지우는 신입 일자리…함께 사라지는 ‘현장 훈련’
[서울=뉴스닻] 최승림 기자 = AI가 반복적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학생과 사회초년생들이 조직 안에서 판단력과 책임감을 익히던 초기 커리어 단계의 역할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던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다.

깨지는 ‘대학–회사’ 암묵적 계약
수십 년간 인재 육성에는 암묵적인 분업이 있었다. 대학은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고, 기업은 일하는 법을 가르쳤다. 신입·주니어 직무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조직 내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몸으로 익히는 완충지대였다. 그러나 이 구조가 붕괴되고 있다.
202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AI를 “노동시장을 덮치는 쓰나미”에 비유하며, 가장 먼저 사라지는 역할이 바로 신입 단계의 업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입 채용이 줄면서 ‘배우는 자리’ 자체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훈련의 층위
문제의 핵심은 고용 숫자가 아니다. 조직 내부에서 형성되던 훈련의 층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입 업무는 단순 산출을 넘어,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 판단하는 감각을 기르는 과정이었다. 숫자가 맞지 않을 때 이상함을 감지하고, 무리 없이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작업이 이후 단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은 반복과 현장 경험을 통해 쌓인다.
하지만 AI가 이 영역을 대체하면서, 이러한 학습의 통로가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고용주들은 채용을 늘리지 않는 동시에, ‘즉시 전력’을 요구하고 있다.
자동화 이후에도 남는 것은 인간의 판단
전직 애플 엔지니어이자 코치인 조시 헤인스는 “AI는 작업을 처리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판단은 대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판단은 추상적 사고가 아니라, 상황의 맥락을 읽고 위험을 조기에 인지하며 개입하는 능력이다.
기업 내부에서 지식재산권 이슈가 발생했을 때, AI는 절차를 처리할 수는 있어도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 조직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통찰은 가까이서 보고, 작은 실수를 수습하며 축적되는 경험에서 나온다. 신입 역할이 줄어들수록 이 학습은 일부에게만 집중되고, 격차는 빠르게 벌어진다.
교육과 기업이 직면한 파이프라인 위기
대학과 기업 모두 대응이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력서 첨삭 중심의 취업 지원을 넘어, 실제 책임을 지는 경험을 더 이른 단계부터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부 이해관계자가 있는 프로젝트, 수정과 재작업이 필수인 과제, 결정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평가 방식이 요구된다.
기업 역시 신입 단계를 대체할 훈련 시스템 없이 자동화만 앞세운다면, 중장기적으로는 판단력 있는 인재 풀이 고갈될 위험에 직면한다. 기술은 실행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판단이다. 다음 경제에서 속도가 자산이 될지, 리스크가 될지는 이 판단의 질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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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림 기자 (seunglim.choi@newsd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