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시선] 3대 메가 프로젝트 속도전과 내전을 경계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삼전하이닉스’ 발(發) 내전에 돌입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삼전하이닉스’의 두 총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800조, 2000조, 4700조, 그리고 그 이상의 투자설로 촉발된 ‘내전’이다. ‘조’ 단위의 돈이 아주 평범한 쌈짓돈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기이한 효과를 낳고 있다. 서울을 제외한 15개 광역 지자체와 226개 기초 지자체 모두가 ‘삼전하이닉스 내전’에 참전할 태세다. 삼전하이닉스와 반도체, AI, 데이터센터가 모든 지역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삼전하이닉스가 ‘대체불가능한’ 희망이자 미래로 숭배받는 형국이다.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무대의 전면에 섰고, 커튼 뒤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있다. AI, 반도체, 데이터센터는 지역 간 기술, 산업, 기업, 정치, 언론과 여론이 결합된 ‘복합내전’의 전장(戰場)이다.

국가와 기업의 흥망 서사에 인간의 미래 담론들이 결합된 장대한 게임(epic game)의 문이 열렸다. 최태원 회장은 전 세계적인 반도체 수요 급증을 “아비규환”이라고 표현했다. 전 세계 국가와 기업들이 반도체 생산량과 속도를 놓고 로비와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가, 지역 따지지 않고 조건만 맞춰주면 “그게 어디든 모든 곳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삼전하이닉스의 행복한 비명이 전국에 퍼져나가고, 정치권과 언론은 ‘늦어지면 다 죽는다’는 공포감까지 조성하고 있다. 대통령은 ‘반도체 속도전’을 내걸었고,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남광주 지역 반도체 산단을 이재명 대통령의 남은 임기인 4년 안에 완성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매일 쏟아지는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관련 발표와 ‘대체불가’ 대한민국론 앞에서 국민들은 초강대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은 거칠고, 계획은 엉성하다. 기대는 크지만, 가능성은 작다. 표현은 선동적이고, 목표는 매우 정치적이다. 게다가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 삼전하이닉스 사이에 어떤 생각과 계획이 오갔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해당 지자체와 정부의 논의가 얼마나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과 이재용, 최태원 두 회장의 공동발표 이벤트가 있었고, 국민들은 그저 듣고만 있어야 했다. 부지, 용수, 전력, 인력, 반도체 산업 생태계 형성 전략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하거나 선언에 그쳤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뒤늦게 ‘엉성하게’ 준비된 대책을 내놓는 방식에 의존하는 정부의 주장을 믿고 박수쳐 줄 수는 없다. 이들의 선언 하나로 초거대 투자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 한번 없이 확정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여기에 반도체와 AI 산업의 토대를 쌓는 일을 지역균형발전이나 호남 보상론과 같은 정치적 수사 아래 배치하는 정치적 의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와 산업 정책이 정치의 목적에 의해 길을 아예 찾지 못하고 꿈만 꾸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최근 AI 버블에 대한 경고음이 많이 들린다. AI 개발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적자에 허덕이고 빚은 쌓여간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X, 애플 등 거대기술기업들끼리 자금 돌려막기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거나 혁신을 시도했던 기업들도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보고서들이 늘어나고 있다. AI가 엄청난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산업 영역의 구조적 변화는 거의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첨예화되고 있다. 거대기술기업들과 투자 자본들은 더 빠르고 많은 공급주의의 유혹에 빠져들지만, 생태기후위기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반도체 독점, AI 주권과 같은 문제들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삼전하이닉스와 3대 메가프로젝트에 국가와 지역 발전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식으로 속도전을 이끌고 있는 정부를 경계해야 하며, 반도체 내전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대안 정치가 부상하기를 기대한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화나 팬픽을 쓰는 게 훨씬 쉬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지트론(Edward Benjamin Zitron)을 떠올려보자.

이영주 yjlee@newsd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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