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저해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한국이 주목해야 할 필립 아기옹의 생각

“내가 걱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다.” 지난 9월 14일 HEC Paris 강연회에서 프랑스의 경제학자 필립 아기옹(Philippe Mario Aghion)이 인공지능과 딥테크(deep technology) 시대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를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아기옹은 인공지능에 대한 노출이 클수록 특허 출원이 증가했다는 여러 연구결과들을 제시하며, 인공지능이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과 생산성 증대를 가속화 할 것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아기옹은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을 저해하는 제도와 교육의 변화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인공지능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경제 성장의 진정한 잠재력은 혁신 자체에 있다고 보았다. 인공지능과 경제 성장에 대한 무비판적인 낙관론의 위험성을 언급한 것이다. 기술이 가진 혁신 잠재력의 활용 여부는 교육이나 기업 경쟁 정책, 국가의 역할과 같은 제도적 차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아기옹은 현재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에게 교육은 혁신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학업 수준이 하락하고 학생들이 소셜 미디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학교가 사회적 이동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그의 비판은 매우 날카롭다. 특히 저소득층 가정 출신의 똑똑한 아이들이 연구나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그의 비판은 최첨단 기술 시대의 교육 격차와 계급 격차의 연결고리에 모아지고 있다.

"훌륭한 교육 시스템이 있다면 가난한 가정 출신의 아이들도 크게 성공할 수 있고, 교육 시스템이 실패하면 경제는 단순히 교육 성과가 악화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자, 기업가, 그리고 아이디어를 잃게 된다”는 그의 생각은 공교육 시스템 개혁의 방향으로 이어진다. 탄탄한 공교육 시스템 구축과 교육 불평등 해소이다. 아기옹은 소규모 학급과 잘 훈련된 교사가 있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읽기, 쓰기, 문법, 기초 계산 및 정리 증명과 같은 기초 능력에 집중하고 소셜 미디어나 디지털 기기와 같은 교육의 방해 요소를 가능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교육의 개혁에 대한 요구와 함께 아기옹은 경쟁 친화적인 산업 정책을 주문했다. 성공을 거둔 기존 혁신가들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지위를 보호하고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의 혁신’을 유도하는 경쟁 정책에 대한 요구인 셈이다. 새로운 인재와 기업들이 계속해서 기존의 인재나 기업들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최근 소수의 거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기술 독점과 시장 집중 상황을 떠올려 본다면, 아기옹의 주장은 디지털 경제의 한계나 위험에 대한 경고 메시지일 수도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더 많은 오픈소스,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데이터 공유 확대, 그리고 컴퓨팅 역량에 대한 공공 투자 등 아기옹의 ‘경쟁 친화적인 산업 정책’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아기옹의 강연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인공지능 기반의 성장 지향적 기술 담론에 비판적인 탈성장론에 대한 그의 관점이다. 그는 인공지능이나 딥테크에 대한 저항적 관점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만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는 더 깨끗한 에너지원을 찾고 사회가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포함해서, 수소와 핵융합을 통한 에너지 효율이 더 높은 냉난방 시스템,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지역 사회를 보호하는 기반 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적 가능성을 주목하자고 주장했다. 즉, 기술 발전과 혁신의 방향을 잘 찾자는 생각이다.

아기옹은 202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혁신가들의 진입을 가로막아서는 안 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그의 혁신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기술 발전에 따라 기존 일자리가 소멸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지 않도록 실직자들에 대한 높은 수준의 임금 보전과 재교육 등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그의 그치지 않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론’에 대한 생각들이 한국의 교육과 기술산업 정책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이영주/yjlee@newsd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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